사찰 이야기 · 편집 요약, 직접 인용 아님
'궁절'이라 불린 절
화계사 왕실 후원 내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각산 화계사」, 화계사 누리집 「가람배치」·「화계사의 역사」·「보화루」
19세기 후반 대비와 상궁들이 자주 드나들어, 사람들은 화계사를 '궁절'이라고 불렀습니다.
1866년 용선·범운 스님은 흥선대원군의 시주를 받아 화계사의 낡은 건물들을 고쳤고, 사찰은 그래서 지금도 전각 곳곳에 대원군이 쓴 현판이 남아 있다고 소개합니다. 이어 조대비가 명부전을 위해 시주하고 대비와 상궁들의 발길이 잦아지자, 사람들은 이 절을 '궁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찰은 왕실의 시주로 거듭 고쳐 지었기에 화계사의 가람 배치가 여느 절과 다르다고 설명하며, 그 예로 대웅전 앞에 놓인 큰 건물 보화루를 듭니다. 사찰에 따르면 보화루는 일반 살림집의 이모저모를 갖춰 왕실 가족이 절에 와서 편히 쓸 수 있게 배려한 건물이고, 마루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면 불상이 보여 마루에서 바로 예불을 드릴 수 있도록 지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찰은 이런 건물이 서울 근교의 왕실 사찰에서 주로 보이며 보통 '큰방'이라는 뜻의 대방(大房)이라 한다고 덧붙이는데, 보화루는 지금 요사와 종무소, 다실로 쓰입니다. 보화루에 걸린 '화계사' 현판 가운데 하나는 1866년 대방을 고칠 때 흥선대원군이 쓴 것이라 하니, 보화루에서 찾아보세요.

